한국매일 : 南道 정자기행(2098)-완도 이광사 적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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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3월10일 10시40분 88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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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道 정자기행(2098)-완도 이광사 적거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면 금곡리, 흙에 운모(雲母)가 많이 박혀있어 광일(日光)에 쪼이면 금빛을 발한다 하여 金谷(金골짜기)라 개명 하였고 조선 효종때에 김해김씨(金海金氏)와 이천서씨(利川徐氏)가 처음 입향하였던 고을이다.

또 일대는   조선후기 문신으로 서예가이며, 현대 한국학의 시조였던  이광사(李匡師 1705 숙종 31년 ~ 1777 정조 1년)가 나주(羅州) 벽서사건(壁書事件)에 연루되어 회령(會寧)으로 유배되었다가 많은 문인들이 학문 관계로 그를 찾아 모여들자 그를 다시 진도(珍島)로 배소를 옮겼다가 또 신지도로 58세 때 이배되었으며 73세 까지 15년 동안 그곳에서 유배자로 일생을 마쳤던 곳이 있다.


완도군 신지면 대곡70번길 33, 큰 채는 집 주인 황치곤이 쓰고 이광사는 별채에서 더불어 살았다. 작은 아들 이영익이 이곳에 와서 아버질 보살폈다.이곳에서 글씨를 쓰고 원교집선(), 서예이론서인 서결()을 남겼다. 긴 유배자가 작은 서재에서 남긴 시는 초연하기 보다 운명의 비애가 묻어나 있었다.

대숲(叢竹)이 어둑한 곳에 감잎이 돋았는데/온종일 따뜻한 바람 뜰로 불어 오네.
등불은 새벽에 관음굴(觀音窟)에 걸렸는데/상선(商船)은 아침에 좌일등에 몰려 드네

배개 베고 누워 울타리 곁에 국화를 키우고/지팡이 짚고 낚시 걸린 물고기 자주 보노라.
궁벽한 거처 속세의 일이 없는 지라/내 생에 절로 여유 있음을 알겠노라

사진=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청해진서로 1161-8  완도청해포구촬영장 내

......1762(영조 38년 건륭 27) 헌부 지평 윤면동(尹冕東)은 "요즘 들으니, 이광사(李匡師)·심약(沈鑰)이 북쪽 변방에서 목숨을 붙이고 있어, 지방인들을 많이 모아서 글과 글씨를 가르치고 있다 합니다. 변방의 어리석은 풍속이라 어찌 선동하여 어지러운 데에 빠져드는 근심이 없을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회령부(會寧府)에 안치한 죄인 이광사와 갑산부(甲山府)의 노비로 삼은 죄인 심약을 모두 절도로 이배하시고 또한 본도로 하여금 양읍의 사민(士民)들을 밝게 깨우쳐 흉적들과 서로 연결되거나 통할 수 없음을 알게 하고, 그 중 친밀한 자들은 적발하여 법에 따라 다스려 뒷날의 폐단을 막게 하소서."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이광사는 진도(珍島)에 안치하고 그 학도들은 부사(府使)로 하여금 곤장을 치게 하였으며, 심약은 도신으로 하여금 한 차례 엄한 형장을 가하여 흑산도의 종으로 삼고 그 학도들은 부사로 하여금 형추(刑推)를 한 차례 가하도록 하였다. .....

.....임금이 경현당(景賢堂)에 나아가 주강하여 《중용》을 강하였다. 장령 한필수(韓必壽)가 아뢰기를,“지난번 대신(臺臣)의 청으로 심약(沈鑰)과 이광사(李匡師)를 절도(絶島)에 옮긴 것은, 대개 심원(深遠)한 염려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심약을 흑산도에 이배한 것은 진실로 마땅하고, 이광사는 진도에 이배하였는데, 비록 해도(海島)라고 할지라도 본래 좋은 곳이며, 또한 이곳은 관부(官府)가 있는 곳이니 이들 죄인을 옮겨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죄인 이광사를 다시 머나먼 작은 섬에 옮겨 외부 사람과 교통하는 폐단을 끊도록 하소서.”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여기서 '머나먼 작은 섬'은 지금의 완도군 신지면이었다. 정리하면 경종 1년(1721) 부친 예조판서 이진검은 노론 4대신을 탄핵하던 중 밀양으로 유배(이광사는 당시 17세)되었다가 죽었고, 영조 31년(1755) 나주 괘서사건으로 백부 이진유(李眞儒)가 처벌을 당할 때 이에 연좌되어 함경북도 부령(富寧)으로 유배(51세)되었다가 문인에게 글과 글씨를 가르쳐 선동한다는 죄목으로 전라남도 신지도(薪智島)도 내몰렸다. 그의 적거에서 시서주(詩書酒)로 보내면서 흘렸던 이광사,

온갖 새들은 깃들어 다 평온하고/외로운 귀뚜라미 소리 홀로 슬프네.
조각 구름은 돌에 의지하여 있고/외로운 달은 시골을 비춰 오네.
百鳥棲皆穩  孤跫響獨哀  片雲依石在   孤月照鄕來/ 無題/圓嶠  李匡師

당시에 전라남도 같은 강진으로 동시대에 유배되었던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할아버지 뻘 되는 원교가 남긴 강진 백련사(白蓮寺)의 현판을 보고 평하기를 "문에 주련은 김생의 글씨이고 / 누각 현판은 도보가 쓴 것인데. 세대가 멀어 가짜일까 의심하지만 / 무게 있는 그 이름 허전이 아니라네 門帖金生筆 樓懸道甫書 世遙疑有贋 名重覺無虛"했다. 그리고 그가 유배지에서 죽자 만시 같은 의미로의 심정으로 그를 이렇게 평했다.

삼한의 글씨들이 절작이 적은 편인데 / 근자에 도보(이광사) 있어 세상에 이름났지
한림학사 출신으로 변방에 귀양 와서 / 천민들에게 예절을 가르친다고 하지마는
三韓墨妙少絶藝 近有道甫獨名世 自從端明謫儋厓 頗學儀曹敎蠻隸

거룩할손 일개 포의로 귀양을 갔던 그는 / 우레 같은 명성이 백세를 울리고 있네
그가 쓴 백련사 액자를 볼라치면 / 꿈틀대는 용처럼 헌걸차고 기세 있지
偉哉編配一布衣 聲若雷霆殷百歲  觀其白蓮題額書 佶屈故作挐龍勢......

그리고 다산은 탐진 풍속 노래(耽津村謠)를 통해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시골 애들 습자법이 어찌 그리 엉망인지 / 점획과파 모두가 낱낱이 비뚤어져
글씨방이 옛날에 신지도에 열려 있어 / 아전들 모두가 이광사에게 배웠다네.
村童書法苦支離 點畫戈波箇箇欹 筆苑舊開新智島 掾房皆祖李匡師...

그의 본관 전주. 자는 도보(道甫)호는 원교(圓嶠)혹은 두남(斗南)이며 신지도 유배기간에는 수북(壽北)이라 했다.  한성부 원교산(圓嶠山)에서 태어났으며 호를 원교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조선 제2대 임금 정종의 왕자 덕천군 이후생(德泉君 李厚生)의 후손으로 호조판서 석문 이경직(石門 李景稷)의 현손(玄孫)이고, 예조판서 이진검(李眞儉)의 넷째 아들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를 쓴 이긍익 (1736영조12~1806 순조6)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양명학자(강화학파)로 육진팔광(六眞八匡)중의 한 사람이며 강화학파()를 형성시킨 사상가이자 문학가요 서예가로서 원교체(圓嶠體)를 완성하였다.

또한 윤순()에게 글씨를 배워 진·초·예·전서에 모두 능했고,  그림에서도 산수·인물·초충() 등 여러 분야에 뛰어났다. 인물화는 남송원체화풍()을 보이며, 산수화는 간결하고 담백한 남종화()의 특징을 나타낸다. 문집으로 두남집()이 있다.

소론이 영조의 등극과 더불어 실각함에 따라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였으며, 50세 되던 해인 1755년(영조 31) 소론 일파의 역모사건에 연좌되어 부령()에 유배되었다가 신지도()로 이배()되어 유배기간 23년만에 임지에서 일생을 마쳤다. 그의 긴 호흡의 찬 회포는 가슴시린 유정천리였다.

평생(平生) 속된 뜻 없이 살았거늘/늙어서 유배객(流配客)이 되었네.
꿈속에 내도재(來道齋=친구 김광수 서실)를 찾기도 하고길을 앍고 북극성 바라 보기도 했네.
平生不俗志 老大爲流人 有夢尋來道 迷方望北辰

만 가지가 스스로 뜻을 얻은 듯도 하고/ 외로운 객(客)이 더불어 마음을 기쁘게 하네.
점점 문장이 지극한 것을 사랑하는데/운명이 더욱 사나워 지는 것만 근심할뿐.
萬形自得意 孤客與怡神 漸愛文章細 唯愁命益嗔

정제두()에게 양명학()을 배웠고, 윤순()의 문하에서 필법을 익혔다. 시·서·화에 모두 능하였으며, 특히 글씨에서 그의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를 이룩하고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호(韓濩, 1543-1605) 이후 조선 후기 서풍(書風)의 조선화(朝鮮化)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로 평가되는 이광사의 행서이다. 조선시대 행서의 명가로는 이용(李瑢), 한호(韓濩), 윤순(尹淳), 이광사(李匡師) 등을 꼽는다.

이광사도 그림을 그렸으나 이름이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그림에 대한 평을 남긴 것을 보면, 그림을 보는 안목만은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림은 산수와 인물·초충()을 잘 그렸다. 인물에서는 남송원체화풍()의 고식()을 따랐으나, 산수는 새롭게 유입된 오파()의 남종화법()을 토대로 소박하면서 꾸밈없는 문인취향의 화풍을 보였다.

그는 1755년(영조 31) 나주괘서사건()에 연좌되어 부령()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북쪽 청년들을 선동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신지도()로 이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먹이를 줘도 기장과 벼는 싫다 하고/시비를 사절한다면서 말들이 많구나
미운 것들은 원래 오지를 않건마는/온 종일 들보를 돌면서 날아다닌다
營食違粱稻 多言謝是非 嫌猜元不到 終日繞梁飛 /圓嶠書訣 圓嶠集選

나주벽서사건(羅州壁書事件) 또는 나주괘서지변(羅州掛書之變)으로 촉발 을해옥사(乙亥獄事)를 낳게됐다. 윤지의 난(尹志-亂)이라고도 한다. 사건은 1755년 전라감사 조운규나주의 객사인 망화루(望華樓) 기둥에 괘서가 걸려 있다고 조정에 보고하면서 시작되어 사건 수사에 소론과 남인들이  연루되면서 노론이 득세하게 되면서 탕평책의 균형이 깨지는 이중적 잣대가 적용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영조실록 31년 2월 4일

그리하여 박찬신·조동정·조동하·김윤 등 많은 소론 측 인물들이 함께 사형되었고, 이광사·윤득구 등은 원배(遠配)되었다.

그의 자식으로는 연려실 이긍익(李肯翊) 차자 신재 이영익(李令翊) 이도희(李度熙)의 처가 된 딸이 있었다. 이광사가 처음 유배시 함경도 부령 땅으로 유배를 간 시기는 그의 나이 50세 되던 해였다. 이때 어린 딸은 아버지에게 수시로 한글로 편지를 적어 보내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수박을 드시게 하려고 수박씨를 부쳐주었다. 딸에 대한 훈육도 잊지 않는 등 유독 멀리서나마 부정을 보냈다. 

딸에 보내는 편지에서..."날마다 일찍 일어나 이부자리를 네 손으로 개어 깨끗한 곳에 두어라. 이어 비를 가지고 자리를 깨끗하게 쓸고 머리는 얼레빗으로 빗고, 빗을 빗통에 넣어 두어라. 이따금 거울을 보며 눈썹과 살쩍을 족집게로 뽑고 빗에 묻은 때를 씻어 깨끗하게 해라. 세수하고 양치하며 다시 이마와 살쩍을 빗질로 매만지고, 빗통을 정리하고 세수한 수선은 늘 제자리에 두어라. 무릎을 꿇고 앉아 한글 한 번 읽고 한자 몇 자를 단계에 따라 읽어라.

.........일이 없거든 반드시 단정하게 꿇어 앉아 있어라. 두 새언니가 겨를이 없어 정리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자세히 살펴 자주 일어나 대신 정리해라. 새언니가 시키는 일이 있으면, 공손하게 대답하고 바로 일어나 시킨 대로 하되 게으름을 피우지 말거라. 꾸짖는 일이 있거든 새언니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 배우도록 힘쓰며, 감히 노려보거나 성내며 대답하지 말거라." 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넘친다.

새들은 모두 깃들어 평온한데 /외로운 귀뚜라미 소리 홀로 슬프네. 
조각 구름은 돌에 의지해 있고/외로운 달은 시골을 비춰주네
百鳥棲皆穩 孤蛩響獨哀 片雲依石在 孤月照鄕來

처철히 권력의 구렁에서 매몰당한 한 시대의 지식인은 자연스레 피어나는 진달래를 두고 파산의 붉은 빛(巴山萬里色)이라는 말을 남기고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기억하라! 한이 한번 맺히면/ 영원토록 마멸되지 않음을.
파산(巴山) 만 리 붉은 빛은/ 망제(望帝) 천년의 피눈물임을!.
當知恨一結 終古不磨滅 巴山萬里色 望帝千年血

비운의 선비 이광사(李匡師),  그가 서예를 쓸때의 심정을 소학(小學) 선행제육(善行第六)의 한 구절로 대신한다.

명도 선생이 글씨를 쓸 적에 매우 조심하더니 일찍이 어떤 사람에게 일러 말하기를 "글씨를 쓸 때에 조심하는 것은 글씨를 잘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이것이 곧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明道先生作字時 甚敬 嘗謂人曰 非欲字好 卽此是學
참고문헌=영조실록. 고전번역서
문화.오인교

참조=완도행정구역
금일면 화목리·신구리·척치리·장정리·충동리·월송리·동백리·사동리·장원리
노화읍 이포리·도청리·등산리·고막리·신양리·구석리·동천리·충도리·내리·방서
완도읍 군내리·가용리·죽청리·정좌리·대야리·망석리·중도리·정도리·화흥리·대신리
고금면 농상리·덕암리·도남리·청용리·회룡리·봉명리·상정리·세동리·가교리·덕동리
군외면 풍리·불목리·황진리·원동리·신학리·대문리·삼두리·당인리
금당면 차우리·육산리·가학리
보길면 중통리·예송리·부황리·정자리
생일면 유서리·금곡리·봉선리
소안면 비자리·이월리·가학리·맹선리·진산리·미라리·당사리·횡간리
신지면 송곡리·대곡리·신상리·월양리·신리·동고리
약산면 장용리·우두리·관산리·득암리·해동리
청산면 도청리·당락리·읍리·청계리·부흥리·양중리·상동리·동촌리·신흥리·국산리·지리·모도리·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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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오인교 (nox9109@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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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kkl5445 (2015-03-27 07:58:51)     23   31  
공후요(箜篌謠)-이백(李白)

攀天莫登龍(반천막등룡) : 하늘을 올라도 용에 오르지 말고
走山莫騎虎(주산막기호) : 산을 달려도 호랑이를 타지는 말라.
貴賤結交心不移(귀천결교심부이) : 귀하고 천한 이가 서로 친 구되어 마음 변치 않은 일은
唯有嚴陵及光武(유유엄능급광무) : 오직 엄바릉과 광무제 뿐이었다.
周公稱大聖(주공칭대성) : 주공이 큰 성인이라도
管蔡寧相容(관채녕상용) : 관숙과 채숙을 어찌 용서할 수 있었던가.
漢謠一斗粟(한요일두속) : 한나라 노래에 한 발 곡식도
不與淮南舂(부여회남용) : 회남의 아우와는 찧지 않는다고 했었다.
兄弟尙路人(형제상노인) : 형제도 오히려 남이 되는 세상
吾心安所從(오심안소종) : 내 마음은 따를 사람 누구인가.
他人方寸間(타인방촌간) : 남의 작은 속마음에도
山海幾千重(산해기천중) : 산과 바다가 그 몇 천 겹이나 되던가.
輕言托朋友(경언탁붕우) : 친구에게 속마음 경솔히 말하여 의탁했다가
對面九疑峰(대면구의봉) : 구의봉 같은 것과 마주했노라.
多花必早落(다화필조낙) : 많은 꽃은 반드시 일찍 지나니
桃李不如松(도리부여송) : 복사꽃과 오얏꽃은 소나무만 못하도다.
管鮑久已死(관포구이사) : 관중과 포숙은 오래전에 이미 죽었으니
何人繼其蹤(하인계기종) : 어떤 사람이 그들의 발자취를 이어가리오.
 nmhj879 (2015-03-27 07:50:10)     31   30  
고유소사항(古有所思行)-이백(李白)

고유소사행-이백(李白)

고유소사항(古有所思行)-이백(李白)
我思仙人乃在碧海之東隅(아사선인내재벽해지동우) : 나는 신선 사는 푸른 바다 동쪽 모퉁이를 그리워한다네
海寒多天風(해한다천풍) : 바다는 차갑고 하늘에는 바람이 많고
白波連山倒蓬壺(백파련산도봉호) : 흰 물결은 산처럼 잇달아 동해 신선의 섬, 봉호에 거꾸러진다.
長鯨噴湧不可涉(장경분용부가섭) : 큰 고래가 물을 뿜어대니 건너 갈 수 없고
撫心茫茫淚如珠(무심망망누여주) : 아득히 마음을 달래니 구슬처럼 눈물이 난다.
西來靑鳥東飛去(서내청조동비거) : 서쪽에서 날아 온 푸른 새가 동으로 날아가니
願寄一書謝麻姑(원기일서사마고) : 원하건대, 편지 한 장을 마고 신녀에게 보내었으면.
 hjhj788 (2015-03-27 07:48:48)     26   32  
산인권주(山人勸酒)-이백(李白)
擧觴酹巢由(거상뢰소유) : 잔 들어 은자 허 소유에게 술을 권하노니
洗耳何獨淸(세이하독청) : 귀 씻었으니 어찌 홀로 깨끗한가.
浩歌望嵩岳(호가망숭악) : 호방하게 노래하며 숭산을 바라보니
意氣還相傾(의기환상경) : 의기를 도리어 서로 기울어 보노라.
 nmhj879 (2015-03-27 07:46:22)     29   27  
장가항(長歌行)-이백(李白)

桃李待日開(도리대일개) : 복사꽃, 오얏꽃 해볕 기다려 피어나고
榮華照當年(영화조당년) : 영화롭구나, 제철 맞아 화려하게 비추는구나.
東風動百物(동풍동백물) : 봄바람이 만물을 흔들어 놓고
草木盡欲言(초목진욕언) : 초목은 저마다 무언가 말하려하는 구나.
枯枝無丑葉(고지무축섭) : 마른 나뭇가지에 시든 잎 하나 없고
涸水吐淸泉(학수토청천) : 마른 물가에서 맑은 샘물 토해내는구나.
大力運天地(대력운천지) : 큰 힘이 온 천지를 움직이니
羲和無停鞭(희화무정편) : 희화는 해 실은 수레에 채찍질 멈추지 않아서라네.
功名不早著(공명부조저) : 공명을 일찍이 나타내지 못했으니
竹帛將何宣(죽백장하선) : 역사에 장차 무엇을 적으리오.
桃李務靑春(도리무청춘) : 복사꽃, 오얏꽃 푸른 봄에 화창하니
誰能貫白日(수능관백일) : 누가 능히 밝은 해를 꿰어 멈추리오.
富貴與神仙(부귀여신선) : 부귀하고 신선이 되는 일
蹉跎成兩失(차타성량실) : 시기를 잃어 두 가지를 다 잃었단다.
金石猶銷鑠(금석유소삭) : 쇠와 돌도 여전히 닳고 녹아 가는데
風霜無久質(풍상무구질) : 바람과 서리에 오래 견딜 것이 없도다.
畏落日月後(외낙일월후) : 세월의 뒤에 떨어질까 두려워
强歡歌與酒(강환가여주) : 억지로 노래하고 술 마시며 즐긴다.
秋霜不惜人(추상부석인) : 가을 서리는 사람을 아끼지도 않고
倏忽侵蒲柳(숙홀침포류) : 갑자기 여린 사람의 몸을 엄습해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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